
2025년 현재 한국 금융정책의 중심에는 ‘서민금융 안정화’가 있다. 고금리와 경기 둔화가 장기화되며 사회의 신용격차가 확대되자, 정부는 단순한 금리 지원을 넘어 구조적 신용 복원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과거의 서민금융은 위기 대응 성격이 강했지만, 이제는 금융 포용과 자립 지원을 목표로 재편되고 있다. 특히 중저신용자 계층은 금융 접근성 부족과 이자 부담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어, 맞춤형 대출·보증·채무조정 프로그램이 동시에 강화되고 있다. 이 글은 최근 3년간 서민금융 정책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중저신용자 지원제도가 어떤 구조적 전환을 거치고 있는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1. 서민금융의 현황과 제도적 한계
서민금융은 소득 하위 30~40%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지원 제도로, 대출·보증·상환유예 등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2022년 이후 금리 인상기와 경기 둔화가 맞물리며 이 제도는 구조적 한계에 부딪혔다. 첫째, 제도 이용자의 60% 이상이 단기 저리대출에 집중하면서 상환부담이 누적되었고, 둘째, 저신용자 대상 보증한도가 부족해 비제도권(대부업·사금융)으로 유출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셋째, 지원 제도의 중복·분산으로 체계적 관리가 어려웠다. 예를 들어, 서민금융진흥원과 신용보증재단이 별도로 운영하는 상품 간 중복지원이 많았고, 채무조정 절차는 복잡해 접근성이 떨어졌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한 정부는 2023년 이후 서민금융을 ‘일시 지원’에서 ‘구조적 자립’으로 전환하기 위한 로드맵을 발표했다. 핵심은 대출 중심의 단기정책에서 벗어나, 금융·복지·신용회복을 통합 관리하는 장기 체계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2. 중저신용자 지원정책의 확대와 혁신
중저신용자는 신용점수 600~800점대에 위치한 계층으로, 금융 접근성이 가장 애매한 구간에 속한다. 은행 대출은 어렵고, 비제도권 이자는 부담스럽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2023년부터 ‘중금리 신용대출 시장 활성화 정책’을 추진했다. 첫째, 정책형 중금리 대출의 금리를 8% 이하로 제한하고, 대출 가능 금액을 2,000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상향했다. 둘째, 민간은행이 중신용자 대출을 확대할 수 있도록 정책보증 70%를 지원하고, 부실 발생 시 정부가 손실의 일부를 분담하는 ‘공유형 리스크 시스템’을 도입했다. 셋째, 신용점수 개선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여, 상환이력 6개월 이상 유지 시 금리를 1%p 낮추고, 일정 기간 무연체 유지 시 추가 인하 혜택을 제공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단순한 대출 완화가 아니라 신용복원 기반을 강화하는 구조적 지원이다. 결과적으로 2025년 상반기 중금리 대출 비중은 전체 신용대출의 23%로 상승했고, 저신용자의 대부업 이용률은 3년 만에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3. 채무조정제도의 개편과 신속한 재기 지원
서민금융의 안정화를 위해서는 단순히 대출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이미 채무불이행 상태에 놓인 차주의 재기를 돕는 제도가 필수적이다. 과거에는 신용회복위원회 중심의 절차가 복잡하고, 기간이 1년 이상 소요되어 실효성이 낮았다. 그러나 2024년 이후 ‘신속채무조정제’가 도입되면서 시스템이 혁신되었다. 이 제도는 연체 발생 90일 이내 차주를 대상으로, AI 신용평가를 통해 상환 가능성을 판단하고, 최대 3년간 원금상환 유예 또는 이자 감면을 자동 적용한다. 또한 재기 지원형 채무조정은 사회적 배려 계층(청년, 자영업자, 실직자 등)을 우선 대상으로 하여, 신용불량 등재 없이 채무 조정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신용정보원의 데이터 연동으로 금융기관 간 중복지원이 방지되고, 차주의 채무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개편을 통해 제도의 접근성과 신속성이 모두 향상되었으며, 채무조정 승인 소요 기간은 과거 평균 270일에서 40일로 단축되었다. 이는 금융복지 차원에서 ‘회복 가능한 부채’ 개념을 제도적으로 확립한 중요한 변화였다.
4. 디지털 기반 서민금융 서비스의 확대
2025년 서민금융의 또 다른 변화는 디지털 전환이다. 기존의 오프라인 중심 지원은 접근성이 낮고 절차가 복잡했지만, 이제는 모바일 기반의 ‘서민금융 통합플랫폼’이 구축되었다. 차주는 앱을 통해 본인의 신용점수, 채무현황, 이용 가능한 지원상품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으며, 상담부터 승인까지 전 과정을 비대면으로 진행할 수 있다. 인공지능 챗봇이 차주의 재무상태를 분석해 적합한 대출·보증·상환유예 프로그램을 추천하고, 신용회복위원회의 조정 결과도 실시간으로 통보된다. 또한, 금융교육·소비습관 교정 프로그램이 결합되어 단순한 금융지원이 아닌 ‘금융역량 강화 서비스’로 발전했다. 이러한 디지털화는 제도적 사각지대를 줄이고, 특히 지방·고령층·저소득층의 접근성을 크게 개선했다. 데이터 기반 심사를 통해 부정수급을 방지하면서도, 실제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금이 신속히 전달되는 구조가 완성되었다. 서민금융의 디지털 전환은 효율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강화한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5. 정책의 성과와 향후 과제
서민금융 안정화 정책의 효과는 이미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2025년 상반기 기준 서민금융 이용자 중 42%가 신용점수를 개선했으며, 저신용자의 연체율은 1.8%에서 1.1%로 하락했다. 중금리 대출 잔액은 3년 전 대비 2.5배 증가했고, 대부업 시장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다. 그러나 남은 과제도 분명하다. 첫째, 정책금융의 재원 안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정부 보증비율이 높을수록 재정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둘째, 중저신용자의 상환능력 강화를 위한 금융교육과 자산형성 프로그램이 확대되어야 한다. 셋째, 비은행권(카드사·캐피털사)과의 데이터 연계를 강화해 제도권 금융 접근을 완성해야 한다. 향후 정책은 단기 지원보다 ‘금융 자립’을 목표로, 맞춤형 신용복원·저축지원·직업연계 프로그램이 결합된 형태로 발전할 전망이다. 결국 서민금융의 궁극적 목표는 빈곤 완화가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 금융 생태계에 재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결론
서민금융 안정화 대책과 중저신용자 지원제도의 변화는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다. 이는 신용사회의 기반을 재구축하는 구조개혁이다. 금리보전·보증확대·채무조정·디지털 전환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책은 ‘위기 대응’에서 ‘미래 대비’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이제 금융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자립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중저신용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대출이 아니라, 상환 가능성과 자산 형성을 동시에 고려한 맞춤형 지원이다. 정부가 설계한 서민금융의 새로운 방향은 바로 이러한 균형 위에서 작동한다. 고금리·저성장의 시대에도, 신용의 사다리를 다시 세우는 정책이 지속된다면 한국 금융은 사회적 신뢰와 포용의 구조를 강화하며 한 단계 성숙할 것이다.